1박 2일 책읽기 후기

공부팀 조회 수 5099 추천 수 0 2011.02.09 10:02:04

지난 1월 29-30일에 있었던 빈집 1박2일 책읽기에 참여했었습니다. '게으름', '빈집', 그리고 '책읽기'는 모두 저의 관심 태그이기 때문에 너무도 반가운 마음으로 참여했어요. 특히 빈집이라는 공간에 계속해서 관심을 조금씩 가져왔고 어떻게든 함께 해볼 수 있는 기회를 호시탐탐 노려왔었는데 빈가게를 몇번 가본 것 빼고는 그럴 기회가 없어서 아쉬워하던 차에 책읽기를 통해서 빈집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빈집도 둘러보고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저녁을 대충 해결하고 여덜시에 빈가게에 도착했는데 몇몇 분이 앉아계셨습니다. 통성명을 조금씩 하고 이런저런얘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나토코의 귀농했다 돌아온 얘기가 기억이 나네요. 사람이 한두명씩 차면서 함께 먹을 것이 가득 찼습니다. 귤, 바나나등의 과일과 두종류의 차, 그리고 쿠키와 떡 그리고 아르님이 사오신 호도과자까지. 세종류의 번역본과 지음이 준비해온 각종 복사물과 읽을 책들과 함께 상을 풍요롭게 채웠습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고 자기소개와 대강의 계획을 짜고 본격적으로 책읽기가 시작됐습니다.

 

말 그대로 소리를 내어 책을 읽는 것이 시작 됐고 게으를 권리의 책 내용이 주장하는 바에 걸맞게 거의 세시간 정도 딱 읽으니 읽기가 끝난 것 같습니다. 중간에 조금씩 쉬느라, 또 나중에 소감이 길어져서 열두시가 넘어간 것 같지만요. 강수돌 번역본을 텍스트로 삼아서 읽기 시작했는데 비교해보니 번역이 누락되고 변용된 것이 많아져서 계속해서 비교해서 읽어야 했습니다. 진보의 자식이 노동인지 노동의 자식이 진보인지하는 심각한? 명확한 오역도 나오고 말이죠. 저는 아예 삼분의 1정도 읽을 때쯤에 다른 번역본으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귀로 들어오는 내용과 눈에 들어오는 내용이 달라서 굉장히 집중해야 했는데 오히려 그 때문에 더 집중을 하면서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 번 책읽기때도 이 방법을 써보면 좋을 것 같아요. 조금씩은 서로 다른 번역본을 읽으며 내용을 파악하면서 비교하면 다양한 재미와 해석이 나오게 되는 것 같아서요.(효율은 떨어지겠지만요)

 

읽은 후에 소감을 나누면서도 얘기했지만 이 당시에만 해도 진보(기계)에 대한 기대가 컸었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 부작용이 얘기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기계 자체에 대한 회의가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운영방식, 자본과 노동자의 관계의 측면에서 논의됐거나 일자리를 뺏은 기계에 대한 감정적인 반감, 또 그러한 경제적 현상의 결과로 인한 삶의 파괴 수준에서 논의된 것이지 요즘처럼 생태/환경주의적인 시각이나 석유문명에 대한 근본적 반성을 기반으로 한 회의는 찾기 힘든 것 같습니다. 지금을 살아가는 그러한 시각들을 고려해서 기계문명을 고민하고, 또 비판하는 것은 필요하며 과거의 텍스트들을 다시보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러한 시각을 결여했다고 맑스나 라파르그를 비판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라파르그의 글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주장하던 일할 권리가 어디까지나 우리의 게으름(여유, 휴식)을 확보하기 위한 최소선을 위한 요구여야지 일 자체가 최고의 선으로 여겨져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노동에 대한 여러가지 고민을 하고 요구를 할 때 우리가 원하는 것은 좋은 삶인데 그러한 좋은 삶을 위한 일을 요구하는 활동에 빠지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의 목적이 좋은 삶에서 일 그자체로 바뀌지 않나 하는 반성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자리를 빈집으로 옮겨 군것질을 하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고 밤이 이슥해서야 잠이 들었습니다. 대부분 처음 뵙고 얘기하는 분들이었는데도 별로 불편함 없이 진솔한 대화들을 나눌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잠도 너무 편하게 잘 자고 일어났어요. 계획의 사람인 시금치님이 저희를 깨워주셨고 고양이 세수를 하고 다함께 무려 국민 체조를 하고 책읽기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자본론에서 노동시간에 관련된 파트를 읽었는데 기본적으로 라파르그의 글과 크게 다르지 않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구체적인 사례, 분석, 등이 훨씬 더 체계적으로 서술 돼 있었죠. 좋았는데 뭐랄까, 마르크스의 기본개념들이 잘 이해되지 않은 저로서는 약간 난해한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얼른 자본론을 읽어야 할텐데 말이죠) 몇가지 용어도 너무 딱딱했던 것 같아요. (새번역본은 어떤지?) 아 그리고 아침시간이 기분은 더 상쾌했고 머리는 더 맑았던 것 같은데 지금 돌이켜 생각을 해보면 기억은 별로 남아있지 않네요.

 

다 끝나고 문제의 15분 글쓰기를 했지요. 저는 이런게 처음이라 학교에서 맨날 하던 형식의 15분 안에 몇자로 서술하시오 같은 글쓰기를 해버렸습니다. 다른 분들은 모두 대화체의 편안한 글쓰기를 하셨는데 전 권장되는 논술 형식의 딱딱한 글쓰기를 해버렸습니다. 처음 절 소개할 때 '많이 배우고 싶다'라고 제 소개를 했는데 그 배우고 싶다는 자세가 오히려 절 좀 경직되게 한 것이 아닌지 아쉬움이 남습니다. 다음 번 부턴 어깨에 힘 좀 빼고, 공부한다가 아니고 책 읽으며 논다는 자세로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집에 돌아왔습니다. 책읽기의 가장 큰 장점은 미리 책 읽어갈 필요가 없이 함께 읽으며 그 시간동안 편안하게 집중하면 된다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좋은 책들을 함께 게으르게 읽어갔으면 하네요.

 

15분 글쓰기를 옮겨 적으며 후기의 나머지 허전함을 메울게요. 약간의 수정.

 

노동은 무엇인가

 

 활동가로 산다. 고용주는 후원자들이다. 내가 일하는 성과와 상관 없이 활동비는 살 수 있을만큼 준다. 처리해야 하는 최소한의 일들, 다른 사람들과 맞춰야 하는 회의 등의 시간들로 나의 노동은 어느정도 채워진다. 그 외의 시간은 어떻게 채워져가는가. 일이 없으면 만들어야 하는 활동가. 무슨 일을 만들까 하는 고민의 과정. 책을 읽고,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하고, 신문을 보며 촉각 곤두세우기. 심지어는 많은 사람들의 감성에 접근해야 한다는 필요에 의해 개콘을 봐야 한다는 조언을 듣고 의무감을 갖고 개콘을 보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들은 맑스와 라파르그가 말하는 노동인가.

 

 이와 같은 이들의 기여 덕분에 우리 시대에 회사, 공장에서 하는 노동은 어느정도 제한되어 있다. 하지만 아까 우리들이 쉬며 나눴던 대화해서도 얘기했듯이 우리의 삶엔 이미 노동이란 것이 깊숙히 묻어있다. 노동시간 제한도 좋지만 결국 근원적인 질문은 우리가 어떠한 방식으로 어떠한 태도로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20세기초의  릴레이제도처럼 여전히 청년 알바들은 아침에는 까페, 저녁에는 식당 등 사업장을 바꿔가며 종일 일하기도 한다. 5일만 일해도 일주일치 식량 살 돈이 주어진다면 노동자들의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맑스시대 기업인들의 말은 최근 한국에 등장한 복지 논쟁에서 나오는 복지병 얘기와 크게 다르지 않아보인다. 출산율이 떨어져서 국가적 위기라는 말은 항시적으로 잉여노동력이 대기해야 한다는 주장과 닮았고, 곡물법폐지가 우리 다수의 이익이 된다는 말은 FTA가 국익을 증대시킨다는 주장과 닮았다. 정리하자면 우리는 맑스의 비판이 여전히 유효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우리의 삶의 조건이 향상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와 함께 간단명료하던 자본과 노동의 분류체계는 너무도 혼란스러워서 우리는 더이상 어디까지가 노동인지 알지 못하게 된 것도 분명해졌다.

 

 밤과 낮은 어떻게 나누는가, 어린이는 몇살부터인가, 점심은 언제 먹어야 하는 가 하는 근본적인 고찰(노동자들을 혹사시키기 위해 사용됐던 편법들로 인한 논쟁) 이전에 노동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조차도 쉽지 않을 때 우리는 어떠한 노동을 어떠한 방식으로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 본다. 단순하게 몇시간 일해서 얼마를 받는가에 대한 법제도 개선도 중요할 테지만 우리가 쓰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가 생산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함께 가져가야 할 것 같다.

 

 활동가인 동시에 용돈벌이로 청소도우미로 일하는 나. 남의 빨래와 청소, 정장 드라이크리닝을 맡기고 쓰레기를 분리해서 버리는 잡다한 일들을 하며 귀찮음 이전의 회의감이 든다. 이런 청결이 필요하기나 할까. 작은 푼돈으로 날 그런 회의감이 들게 하는 삶의 고달픈 물적 조건에서 역설적으로 난 고민할 여유를 잃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의 생존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며 이런 역설을 이겨내야지. 나에겐 게으를 권리, 그리고 고민할 권리가 있으니.


시금치

2011.02.09 21:04:53

누구에겐 15분이 이런 거구나...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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